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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IMF 외환위기 1998년 금 모으기의 과정과 결과"
locale: ko
category: case_study
category_name: "사례 연구"
translation_status: original
license: cc_by
author: "인조이스 편집팀"
source_url: https://injoys.com/ko/articles/imf-crisis-1998-gold-collection-process-and-results
published_at: 2026-10-06T14:27:2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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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 외환위기 1998년 금 모으기의 과정과 결과

> 1998년 금 수집 캠페인은 국민이 보유한 금으로 외화를 확보하는 참여 운동이었다. 참여 규모의 출처별 차이와 보상 방식을 짚고, IMF 차입금 상환 및 위기 책임 논쟁을 구분한다.

## Key Points

- 1997년 한국의 외환 부족은 국내 금융·기업 부실과 해외 자금 회수가 맞물리며 심해졌다.
- 1998년 금 수집에는 무상 기부와 대금을 받는 참여 방식이 함께 있었다.
- 참여 인원과 수집량은 공공 역사 해설 사이에서도 달라 출처와 집계 범위를 함께 밝혀야 한다.
- 한국은 2001년 8월 23일 외환위기 때 빌린 IMF 차입금의 상환을 마쳤다.
- 국민 참여의 의미와 정부·기업의 위기 책임은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

한국 국민은 1998년 금을 내놓아 IMF 외환위기 속 외화 확보에 힘을 보탰다. 위기 수습에는 국제금융 지원과 경제 조정도 함께 작용했다. 이 참여는 공동 대응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이 글은 국가기록원과 우리역사넷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확인 시점은 2026년 10월이다.

## 1997년 외환 부족은 왜 발생했나

외환위기는 대외 지급에 필요한 외국 돈을 제때 구하기 어려워진 사태다. IMF는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국제기구의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이 기구의 지원을 받은 경제위기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위기의 배경에는 기업의 과도한 차입과 금융기관의 부실이 있었다. 금융기관은 해외에서 단기로 빌린 돈을 장기로 운용했다. 갚을 시점이 먼저 오면 새로운 차입으로 버텨야 하는 구조였다.

1997년 기업의 연쇄 부도는 금융기관에 대한 불안을 키웠다. 태국 등 아시아의 금융 불안도 해외 자금 회수를 자극했다. 국내의 취약한 구조와 국제금융시장의 충격이 맞물린 것이다. 이러한 복합 원인은 [우리역사넷의 역사 해설](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50&levelId=kc_i501300)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위기의 요소 | 당시 문제 | 외환 부족과의 관계 |
| --- | --- | --- |
| 기업 부실 | 빚에 의존한 투자와 연쇄 부도 |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 |
| 상환 시점의 불일치 | 단기로 빌려 장기로 운용 | 당장 갚을 외화 부족 |
| 해외 자금 회수 | 대출 연장 거절과 투자금 회수 | 새로운 외화 조달 통로 축소 |
| 금융 감독의 취약성 | 위험 축적에 대한 대응 부족 | 충격을 흡수할 여력 약화 |

## 외환 부족이 일자리와 생활에 미친 영향

외화 조달의 위기는 기업의 자금난과 가계의 소득 불안으로 이어졌다. 초기 위기 대응에는 높은 금리와 긴축 정책이 포함됐다. 대출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의 자금 사정도 악화됐다.

기업 폐업과 구조조정은 실직을 늘렸다. 당시 사회보장 체계는 급증한 실업 충격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후 경제가 회복돼도 가계가 겪은 손실까지 동시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 지원 요청부터 차입금 상환까지의 연표

1997년 지원 요청과 1998년 국민 참여, 2001년 상환은 서로 다른 단계다. 협상 타결일과 대출 승인일도 구분해야 한다. 지원 약정의 종료와 빌린 돈의 최종 상환 역시 같은 사건이 아니다.

| 시기 | 일어난 일 | 확인 출처 |
| --- | --- | --- |
| 1997년 1월 | 한보 부도로 기업·금융 부실 우려 확대 | 우리역사넷 「IMF 사태」 |
| 1997년 11월 21일 | 정부가 IMF 지원 요청 계획 발표 | 우리역사넷 「IMF 사태」 |
| 1997년 12월 3일 | 한국 정부와 IMF의 협상 타결 | 우리역사넷 「IMF 사태」 |
| 1997년 12월 4일 | IMF 대기성차관 약정 승인 | IMF 대출 약정 이력 |
| 1998년 1월 5일 | KBS 방송 캠페인 시작 | 우리역사넷 「IMF 사태」 |
| 2000년 12월 3일 | IMF 대기성차관 약정 기간 종료 | IMF 대출 약정 이력 |
| 2001년 8월 23일 | 외환위기 관련 IMF 차입금 최종 상환 | IMF 거래 내역 |

약정 기간은 [IMF 대출 약정 이력](https://www.imf.org/external/np/fin/tad/extarr2.aspx?date1key=2025-06-30&memberKey1=550)에 기록돼 있다. 최종 상환일은 [IMF의 2001년 거래 내역](https://www.imf.org/external/np/fin/Tad/extrans2.aspx?acctType1=GRASDA&extrans_flag=Y&memberKey1=550&valueDate=2001&yearType=C)으로 확인된다.

## 1998년 금 모으기 운동의 참여 과정

방송의 호소와 금융기관의 접수망을 통해 개인이 참여했다. KBS는 주택은행 및 수출을 맡은 기업과 협력했다. 캠페인에는 다른 방송사와 금융기관의 참여도 있었다.

당시 참여와 외화 확보의 흐름은 다음과 같았다.

1. 개인이 보유한 금을 접수 창구에 맡겼다.
2. 접수된 금을 감정하고 수출을 위한 물량으로 모았다.
3. 금을 해외에 팔아 외화 확보로 연결했다.
4. 보상 방식으로 참여한 사람에게는 매각 대금을 지급했다.

참여에는 대금을 받는 방식과 무상으로 내놓는 방식이 함께 있었다. 따라서 수집된 금 전체를 기부금으로 설명하면 부정확하다. 1998년 당시 보도도 금을 맡긴 사람이 나중에 대금을 받는 구조를 설명했다. 이는 [당시 캠페인 취재 기사](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2/19/1998021970179.html)에서 확인된다.

## 얼마나 모였고 집계는 왜 다른가

공공 역사 해설에서도 참여 인원과 수집량이 다르게 제시된다. 아래 수치는 각 해설의 표현을 구분해 옮긴 것이다. 어느 한쪽을 다른 쪽의 정정 수치로 간주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 항목 | 우리역사넷 「IMF 사태」 | 국가기록원 「IMF 외환위기 극복」 |
| --- | --- | --- |
| 참여 인원 | 349만여 명 | 약 351만 명 |
| 모인 금 | 약 225톤 | 227톤 |
| 달러 표시 금액 | 당시 시세로 21억 7천만 달러 | 18억 달러어치 |
| 설명된 기간 | 1998년 1월 5일 시작, 3월 14일 공식 종료 | 1998년 초 석 달 동안 |

집계 차이의 원인을 두 해설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참여 기관의 범위와 마감일을 대조해야 한다. 금액은 평가액인지 실제 수출 대금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1998년 금의 가치를 현재 금값으로 바꾸면 다른 질문의 답이 된다. 당시 외화 확보 성과를 설명할 때는 당시의 평가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 국가기록원의 수치는 [해당 역사 해설](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imf.do)에 실려 있다.

## 위기 수습의 전환점과 조기 상환

위기 수습에는 외화 유입과 상환 부담 조정이 함께 작용했다. IMF 지원은 당장 필요한 외화를 공급했다. 해외 채권은행과의 만기 조정은 급한 상환 수요를 줄였다.

1998년 경상수지 흑자 전환도 외화 사정 개선에 기여했다. 경상수지는 상품·서비스 거래 등의 대외 수입과 지급 차이다. 흑자 확대에는 경기 침체에 따른 수입 감소도 작용했다. 흑자라는 결과만으로 생활 형편까지 좋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IMF 연구보고서](https://www.imf.org/-/media/websites/imf/imported-full-text-pdf/external/pubs/ft/wp/2001/_wp01154.pdf)는 채무 만기 조정을 핵심 수습 요인으로 평가한다. 보고서는 금융·기업 부문의 개혁과 자본 유입도 함께 분석한다. 금 수집만으로 회복 전체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은 **2001년 8월 23일** IMF 차입금의 상환을 마쳤다. 실제 인출액은 당시 달러 환산으로 약 195억 달러였다. 약 210억 달러의 IMF 지원 약정액과는 다른 수치다. 약정액과 인출액은 [IMF의 2001년 상환 발표](https://www.imf.org/en/news/articles/2015/09/29/18/03/nb0182)에 구분돼 있다.

| 구분 | 뜻 | 피해야 할 해석 |
| --- | --- | --- |
| 지원 약정액 |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도록 정한 금액 | 전액을 실제로 빌렸다는 해석 |
| 실제 차입액 | 지원 자금 중 실제로 인출한 금액 | 국제 지원 전체와 같다는 해석 |
| 금 수집 평가액 | 모인 금의 가치를 돈으로 표시한 금액 | IMF에 직접 낸 상환액이라는 해석 |
| IMF 차입금 상환 완료 | IMF에서 빌린 해당 자금의 상환 종료 | 한국의 모든 외채가 없어졌다는 해석 |

## 참여 협조 공문이 보여주는 기록의 범위

참여 협조 공문은 행정기관을 통한 참여 요청의 흔적이다. 국가기록원에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 참여 협조」가 등록돼 있다. 목록상 생산연도는 1997년이다.

| 목록 항목 | 등록 내용 |
| --- | --- |
| 관리번호 | DA0037205 |
| 생산연도 | 1997년 |
| 문서유형 | 일반문서 |
| 분량 | 2쪽 |
| 공개구분 | 공개 |

목록의 생산연도를 1998년 방송 캠페인의 시작일과 혼동하면 안 된다. 문서 제목만으로 참여가 강제됐다고 판단할 수도 없다. 구체적인 요청 내용과 시행일은 원문에서 확인해야 한다. 이 글이 확인한 범위는 [국가기록원의 상세 목록](https://archives.go.kr/next/newsearch/showDetailPopup.do?rc_code=1310377&rc_rfile_no=200802049512&rc_ritem_no=000000000021&sitePage=1-2-1)이다.

## 기록과 해석

참여 사실, 위기 원인, 참여의 사회적 의미는 서로 다른 판단 대상이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건과 연구자의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국민의 기여를 인정하는 것과 위기의 책임을 묻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

금 수집은 실제 외화 확보를 겨냥한 활동이었다. 방송과 금융기관이 참여를 연결했다. IMF 차입금의 최종 상환은 캠페인 이후에 이뤄졌다.

### 연구에서 공통으로 짚는 배경

단기 외채의 누적은 위기 설명에서 널리 지적되는 요인이다. 국내 금융·기업 구조의 취약성도 함께 검토된다. 다만 국내 구조와 해외 투자자의 급격한 회수에 부여하는 비중은 다르다.

IMF 연구보고서도 원인 해석에 견해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따라서 어느 한 설명을 역사학계 전체의 합의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초기 고금리·긴축 정책의 적절성 역시 논쟁의 대상이다.

### 국민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비판

비판의 핵심은 위기의 구조적 책임이 국민의 희생 문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역사넷 해설도 이러한 시각을 소개한다. 참여자의 뜻을 평가하는 문제와 정부·기업의 책임을 평가하는 문제는 구분된다.

천혜정의 2017년 연구는 운동을 기억하는 보도 방식을 분석했다. 연구는 그 기억이 과소비 비판이나 국민통합 주장에 활용됐다고 해석한다. 이는 참여자 모두의 동기를 조사한 결과와는 다르다. 연구 범위와 해석은 [논문 초록](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276868)에서 확인된다.

## 오늘날 이 사건을 읽는 의미

이 사례는 경제의 회복과 가계의 회복을 구분하게 한다. 외화 사정이 나아져도 실직과 소득 감소의 영향은 남을 수 있다. 차입금 상환일 하나로 사회 전체의 회복 시점을 정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집단 참여의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여준다. 당시의 참여 경험은 이후 보도에서 다른 의미로 재해석됐다. 사건의 성과와 후대의 기억을 나누면 다음 질문을 구체화할 수 있다.

- 실제 외화 확보 규모는 어느 기간과 범위를 집계한 것인가.
- 위기 대응의 비용은 어떤 집단이 부담했는가.
- 국민 참여를 강조하는 설명에서 어떤 책임이 빠졌는가.

## 자주 묻는 질문

### 금을 내놓은 사람은 모두 기부한 것인가

모두 무상으로 기부한 것은 아니다. 금을 맡기고 나중에 대금을 받는 방식도 있었다. 따라서 전체 수집량과 기부량을 같은 수치로 취급하면 안 된다.

### 모인 금으로 IMF 빚을 전부 갚았나

그렇게 볼 근거는 없다. 금 수출은 외화 확보에 기여한 한 경로였다. 상환에는 국제금융 지원 이후의 외화 사정 개선도 작용했다.

### 상환 완료는 모든 외채의 소멸을 뜻하나

2001년 상환 완료는 해당 IMF 차입금에 관한 사실이다. 정부·금융기관·기업의 다른 대외 채무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IMF 차입금과 국가 전체의 외채는 구분해야 한다.

### 참여 인원은 어느 수치를 인용해야 하나

인용하는 해설의 수치를 출처와 함께 밝혀야 한다. 다른 해설의 인원·중량·금액을 섞으면 집계 기준이 불분명해진다. 세부 비교에는 당시 기관별 집계 원문 확인이 필요하다.

## FAQ

### IMF라는 말 자체가 경제위기를 뜻하나?
IMF는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국제기구의 약칭이다. 한국에서는 1997년 시작된 경제위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 1997년 한국은 왜 외환 부족을 겪었나?
기업과 금융기관의 취약한 재무구조에 해외 자금 회수가 겹쳤다. 단기로 빌린 외화를 장기로 운용한 구조는 상환 부담을 키웠다.

### 1998년 국민 참여는 어떻게 확대됐나?
방송사가 캠페인을 알리고 금융기관이 금 접수를 맡았다. 수출을 담당한 기업도 참여해 개인이 보유한 금을 외화 확보로 연결했다.

### 금을 맡기면 대금을 돌려받았나?
대금을 받는 보상 방식과 무상으로 내놓는 방식이 함께 있었다. 모든 참여를 무상 기부로 설명하면 실제 참여 구조를 놓치게 된다.

### 모인 금은 얼마나 됐나?
우리역사넷은 1998년 캠페인 수집량을 약 225톤으로 설명한다. 국가기록원 해설은 같은 해 초 석 달 동안 227톤이 모였다고 기록한다. 집계 범위의 차이는 두 해설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 한국은 IMF 차입금을 언제 모두 갚았나?
외환위기와 관련한 IMF 차입금의 최종 상환일은 2001년 8월 23일이다. IMF 대기성차관 약정 기간이 종료된 2000년 12월 3일과는 구분된다.

### 금 수집 평가액을 IMF 상환액으로 봐도 되나?
금 수집 평가액은 모인 금의 가치를 표시한 수치다. IMF에 실제로 지급한 상환액과는 다른 항목이다. 이를 그대로 빚 상환 비율로 계산하면 자금 흐름을 잘못 설명할 수 있다.

### 국민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비판은 무엇인가?
정부와 기업의 구조적 책임보다 국민의 희생을 강조했다는 비판이다. 국민 참여의 기여를 인정하더라도 위기 원인과 책임은 별도로 검토할 수 있다.

### 참여 협조 공문은 1998년 문서인가?
국가기록원 상세 목록에는 생산연도가 1997년으로 표시돼 있다. 이는 1998년 방송 캠페인의 시작일과 다른 정보다. 구체적인 시행일과 요청 내용은 공문 원문에서 확인해야 한다.

## Sources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IMF 사태](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50&levelId=kc_i501300)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 극복](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imf.do)
- [국가기록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 참여 협조, 기록물 상세 목록](https://archives.go.kr/next/newsearch/showDetailPopup.do?rc_code=1310377&rc_rfile_no=200802049512&rc_ritem_no=000000000021&sitePage=1-2-1)
- [조선일보: 금모으기 운동의 참여 배경과 방송사별 캠페인 취재, 1998년 2월 19일](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8/02/19/1998021970179.html)
- [IMF Working Paper 01/154: From Crisis to Recovery in Korea: Strategy, Achievements, and Lessons](https://www.imf.org/-/media/websites/imf/imported-full-text-pdf/external/pubs/ft/wp/2001/_wp01154.pdf)
- [IMF: Korea, History of Lending Commitments](https://www.imf.org/external/np/fin/tad/extarr2.aspx?date1key=2025-06-30&memberKey1=550)
- [IMF: Managing Director Congratulates Korea on Early Repayment of 1997 Stand-By Credit, 2001년 8월 22일](https://www.imf.org/en/news/articles/2015/09/29/18/03/nb0182)
- [IMF: Korea, Transactions with the Fund, Disbursements and Repayments Detail, 2001](https://www.imf.org/external/np/fin/Tad/extrans2.aspx?acctType1=GRASDA&extrans_flag=Y&memberKey1=550&valueDate=2001&yearType=C)
- [천혜정, 2017: IMF 외환위기 기억의 사회적 구성: 조선일보의 ‘금 모으기 운동’ 기사를 중심으로](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27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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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 부족, 금 모으기의 참여 방식과 출처별 집계, 2001년 IMF 차입금 상환을 네 칸에 정리한 인포그래픽](https://injoys.com/rails/active_storage/blobs/proxy/eyJfcmFpbHMiOnsiZGF0YSI6MjUxNjgsInB1ciI6ImJsb2JfaWQifX0=--b546f72019900bc72938f4353f695dfff28275e9/ai-903b5108.we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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