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_id":"nbazrmia6u","slug":"jang-yeong-sil-jagyeongnu-making-and-automatic-time-signals","locale":"ko","schema_type":"Article","category":"knowledge_base","category_name":"지식 베이스","title":"장영실 자격루 제작 과정과 자동 시보의 의미","summary":"장영실 등이 만든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기계 신호로 바꾸어 시각을 자동으로 알렸다. 1433년 완성 기록과 1434년 사용 시작, 1536년 제작된 현존 유물을 구분해야 한다.","sponsorship_disclosure":null,"affiliate_disclosure":null,"commerce_disclosure":null,"author":{"name":"인조이스 편집팀","url":"https://injoys.com/ko/about"},"key_points":["자격루는 사람이 물시계의 눈금을 읽고 시각을 알리던 일을 기계 장치로 대신했다.","1433년에는 자격궁루 제작 공로가 기록됐고, 1434년 음력 7월 1일부터 새 누기를 사용했다.","물에 뜬 살대의 움직임이 구슬과 지렛대 장치를 거쳐 종·북·징의 시보로 이어졌다.","1437년에는 궁중 자격루의 신호를 의금부까지 전달하는 방식이 채택됐다.","현존하는 창경궁 자격루 누기는 1536년 개량본의 일부이며 장영실의 원래 기구는 전하지 않는다."],"content_markdown":"장영실 등은 1433년 자격루를 완성했다. 사람이 물시계를 지키며 시각을 알려야 하는 문제를 자동 시보로 풀었다. 1434년 7월부터 사용한 이 장치는 조선의 시간 관리 방식을 바꾼 성과로 기억된다.\n\n이 글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세종실록』 기록을 따르며 2026년 10월에 확인했다.\n\n## 자격루 제작의 과제는 무엇이었나\n\n자격루는 사람이 시각을 읽고 알려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기존 물시계는 물이 차오르면 눈금이 있는 살대가 올라갔다. 담당자는 그 눈금을 지켜보다 시각을 알려야 했다.\n\n시보는 정해진 시각을 소리나 표시로 알리는 일이다. 물시계가 시간을 재더라도 담당자가 잘못 읽으면 신호가 어긋났다. 『세종실록』은 세종이 시보 담당자의 착오를 우려했다고 기록한다. 자격루에는 이 일을 대신할 나무 인형 장치가 붙었다. [『세종실록』 세종 16년 7월 1일](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607001_004)\n\n| 구분 | 기존의 사람이 지키는 물시계 | 자격루 |\n|---|---|---|\n| 시간 측정 | 물의 흐름과 살대의 눈금 이용 | 물의 흐름과 살대의 움직임 이용 |\n| 시각 판단 | 담당자가 눈금을 읽음 | 정해진 높이에서 기계 장치가 작동함 |\n| 시각 전달 | 담당자가 신호를 냄 | 인형이 종·북·징을 울림 |\n| 남는 관리 업무 | 물시계 관리와 시보 | 물 교체와 장치 관리 |\n\n## 관노 출신 기술자가 관직에 오르기까지\n\n장영실의 관직 진출에는 출신 신분에 따른 반대가 있었다. 그는 동래현 관노 출신으로 알려진 조선 초기 기술자다. 관노는 관청에 속한 남성 노비를 뜻한다.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n\n1433년 실록에는 상의원 임용을 둘러싼 과거 논의가 나온다. 허조는 어머니의 신분을 이유로 반대했다. 조말생은 장영실이 상의원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세종은 이후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 별좌에 임명했다.\n\n기술의 성과가 관직 상승으로 이어진 전환점은 자격궁루 제작이었다. 세종은 제작 공로를 들어 호군직을 더해 주려 했다. 대신들은 찬성했고, 세종은 그 의견을 따랐다.\n\n\u003e 오래도록 전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공이 작지 않다. 호군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n\n세종, 『세종실록』 세종 15년 9월 16일. [해당 기사](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509016_003)\n\n## 제작과 사용을 구분한 연표\n\n자격루의 완성과 실제 사용 시작은 서로 다른 기록으로 확인된다. 우리역사넷의 자격루 해설은 완성 시점을 1433년으로 정리한다. 실록에는 **1434년 음력 7월 1일**부터 새 누기를 썼다고 나온다. 아래 월일은 당시 음력 기록을 그대로 적었다.\n\n| 시기 | 확인되는 사건 | 근거 |\n|---|---|---|\n| 1433년 9월 16일 | 자격궁루 제작 공로와 호군직 부여 논의 | 『세종실록』 세종 15년 해당 기사 |\n| 1434년 7월 1일 | 새 누기 사용 시작과 자동 시보 구조 설명 | 『세종실록』 세종 16년 해당 기사 |\n| 1437년 6월 28일 | 궁중의 시각 신호를 의금부까지 전달하도록 함 | 『세종실록』 세종 19년 해당 기사 |\n| 1438년 | 천체의 변화도 보여주는 옥루 제작 | 우리역사넷 「세종대 천문기기와 역법」 |\n| 1442년 3월 | 감독해 만든 왕의 가마가 부러져 조사받음 | 우리역사넷 「장영실」 |\n| 1536년 | 창경궁에 추가로 자격루 설치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설명 |\n\n1433년의 기사는 제작 성과를 확인해 주는 기록이다. 이 기사만으로 완성 날짜나 시험 일정을 정할 수는 없다. 1434년의 기사는 사용 시작과 장치 구성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우리역사넷 「자격루」](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30\u0026levelId=kc_r300785)\n\n## 자격루 작동 원리\n\n자격루는 수면의 상승을 구슬의 움직임으로 바꾸어 시각을 알렸다. 물시계 부분은 시간이 흐른 정도를 측정했다. 시보 장치는 그 움직임을 받아 소리와 인형의 표시로 바꾸었다.\n\n### 물을 보내는 통과 받는 통\n\n파수호는 물을 흘려보내는 통이고, 수수호는 그 물을 받는 통이다. 1434년 실록은 파수호 4개와 수수호 2개를 기록한다. 수수호는 물을 바꿀 때 번갈아 사용했다. 받는 통의 수면이 높아지면 그 안의 살대도 올라갔다.\n\n### 살대에서 구슬로 이어지는 작동 순서\n\n살대는 정해진 높이에 도달하면 구슬을 내보내는 장치를 움직였다. 작은 구리 구슬은 더 큰 쇠구슬의 방출 장치에 작용했다. 떨어지는 구슬의 힘이 시보 인형을 움직이는 데 쓰였다.\n\n1. 파수호의 물이 수수호로 흘러 들어간다.\n2. 물이 차오르면서 수수호 안의 살대가 올라간다.\n3. 살대가 정해진 위치에서 작은 구슬의 방출 장치를 작동시킨다.\n4. 작은 구슬이 지렛대 장치를 움직여 큰 쇠구슬을 놓아준다.\n5. 쇠구슬의 움직임이 인형의 시보 동작으로 이어진다.\n\n### 종·북·징은 무엇을 알렸나\n\n종·북·징은 서로 다른 시간 구분을 알리는 데 쓰였다. 종은 시를, 북은 경을, 징은 점을 알렸다. 시각을 적은 패를 든 인형도 번갈아 나타났다.\n\n| 표시 장치 | 알리는 내용 |\n|---|---|\n| 종을 치는 인형 | 하루를 나눈 시 |\n| 북을 치는 인형 | 밤을 나눈 경 |\n| 징을 치는 인형 | 경을 다시 나눈 점 |\n| 시패를 든 인형 | 해당 시각의 표시 |\n\n밤의 시보에는 계절에 맞춘 조정도 필요했다. 실록에는 절기에 따라 동판을 바꾸어 쓰는 구조가 나온다. 자동 시보가 물 교체나 계절별 조정까지 없앴다는 뜻은 아니다. [『세종실록』의 누기 구조 설명](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607001_004)\n\n## 궁중의 시각은 어떻게 도성으로 전달됐나\n\n1437년에는 궁중 자격루의 신호를 의금부까지 전달하는 방식이 채택됐다. 의정부는 기존 누기의 부정확함을 문제로 들었다. 담당자의 착오도 출입 시각이 어긋나는 원인으로 지적했다.\n\n의정부는 중간 지점에 금고를 두어 신호를 전달하자고 청했다. 금고는 금속 타악기와 북을 가리킨다. 궁중 자격루 소리를 듣고 차례로 신호를 내는 방식이었다. 세종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세종실록』 세종 19년 6월 28일](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906028_003)\n\n| 단계 | 역할 | 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 |\n|---|---|---|\n| 궁중 자격루 | 기준이 되는 시각 신호 생성 | 출발점의 시각을 맞춤 |\n| 중간 전달 지점 | 소리를 듣고 다음 신호 전달 | 궁중 밖으로 신호를 이어 보냄 |\n| 의금부까지의 전달 | 도성의 시각 알림에 연결 | 여러 장소가 같은 기준을 따르게 함 |\n\n이 기록으로 자동화의 범위를 구분할 수 있다. 궁중에서는 기계가 시각을 알렸다. 궁중 밖에서는 사람이 소리를 듣고 신호를 이어 보냈다. 이를 공통 시각을 공유하는 운영 체계로 보는 것은 기록에 근거한 해석이다.\n\n## 장영실 업적과 공동 제작의 범위\n\n장영실의 활동은 물시계와 천문 관측 기구 제작에 걸쳐 있었다. 우리역사넷은 명나라에서 천문 기구를 배운 활동도 소개한다. 이 내용은 후대 기록인 『연려실기술』을 함께 살펴야 한다.\n\n기구 제작에는 문헌 연구와 기술 작업의 분담이 있었다. 간의 제작에서는 정초·정인지 등이 제도를 연구했다. 장영실과 이천은 기술자 감독을 맡았다. 갑인자 주조 참여와 광물 생산 감독도 그의 활동에 포함된다. [우리역사넷 「장영실」](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0300)\n\n| 기구 | 주요 기능 | 자격루와의 관계 |\n|---|---|---|\n| 간의 | 천체의 위치 관측 | 시계와 관측 결과를 맞추는 데 관련됨 |\n| 혼천의 | 천체의 위치와 운행 파악 | 천문 관측 사업의 일부 |\n| 앙부일구 | 해 그림자로 시각과 절기 파악 | 햇빛을 이용하는 해시계 |\n| 자격루 | 물의 흐름으로 측정한 시각을 자동 전달 | 보루각에 설치한 물시계 |\n| 옥루 | 시각과 천체 변화 표시 | 1438년 흠경각에 설치한 천문시계 |\n\n앙부일구는 오목한 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읽는 기구다. 자격루는 햇빛이 없는 밤에도 시간을 잴 수 있었다. 옥루에는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가 더해졌다. 이 기구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측과 시간 측정을 맡았다. [우리역사넷 「세종대 천문기기와 역법」](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tt/view.do?levelId=tt_b21)\n\n## 지금 남은 물통은 어느 시대의 것인가\n\n현존하는 창경궁 자격루 누기는 **1536년 제작된 기구의 일부**다. 장영실이 만든 세종대 자격루는 전하지 않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남은 유물을 파수호 3점과 수수호 2점으로 설명한다.\n\n| 구분 | 세종대 자격루 | 현존 창경궁 자격루 누기 |\n|---|---|---|\n| 시기 | 1433년 완성, 1434년 사용 시작 | 1536년 창경궁에 추가 설치 |\n| 성격 | 장영실 등이 만든 자동 물시계 | 세종대 기구를 계승한 개량본의 일부 |\n| 물통 구성 | 기록상 파수호 4개, 수수호 2개 | 현존 파수호 3점, 수수호 2점 |\n| 보존 상태 | 원래 기구가 전하지 않음 | 물통이 남아 있음 |\n\n남은 물통만으로 자동 시보의 전체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수수호에는 제작 참여자들의 직책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대파수호의 명문은 제작 시기를 확인하는 근거다. 현존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으로 확인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설명](https://www.gogung.go.kr/gogung/pgm/psgudMng/view.do?menuNo=800065\u0026psgudSn=370348)\n\n## 기록과 해석\n\n직접 기록된 사실과 후대의 설명은 구분해야 한다. 실록은 자격루 제작 공로와 사용 시작을 확인하는 핵심 사료다. 인물의 어린 시절이나 만년까지 같은 수준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n\n### 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n\n1433년 실록은 세종이 장영실의 제작 공로를 인정했다고 전한다. 1434년 기사는 새 누기의 구조를 설명한다. 1437년 기사에는 시각 신호 전달 방식을 채택한 사실이 나온다.\n\n### 해설에서 공통으로 설명하는 의미\n\n우리역사넷 해설은 자동 시보가 담당자의 부담을 덜었다고 설명한다. 시간 측정과 전달을 기계적으로 연결했다는 해석이다. 다만 이를 오차가 전혀 없는 장치였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n\n### 기록이 엇갈리거나 확인되지 않는 부분\n\n가계에 관해서는 실록과 『아산장씨세보』의 설명이 다르다. 중국에서 귀화한 선대의 시점과 계통이 일치하지 않는다. 상의원 별좌에 임명된 정확한 날짜도 확정하기 어렵다.\n\n1442년 가마 사고 뒤에는 처벌과 파직이 이어졌다. 이후 행적과 사망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를 사망 연도나 은거 장소로 단정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의 일화나 극중 장면도 사료와 구분해야 한다. [우리역사넷의 생애와 기록 검토](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0300)\n\n## 오늘날 자동 시보를 주목하는 이유\n\n자격루는 측정한 정보를 필요한 순간에 전달한 기계의 사례다. 물의 높이라는 연속적인 변화를 정해진 시각의 신호로 바꾸었다. 그 신호는 소리와 인형의 표시로 전달됐다.\n\n오늘날의 자동화와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은 기능의 연결이다. 아래 구분은 당시 장치를 이해하기 위한 현대적 분석이다. 전자 장치나 컴퓨터와 같은 기술이었다는 뜻은 아니다.\n\n- 측정: 물의 흐름과 살대의 높이로 시간 경과를 나타냈다.\n- 작동: 정해진 위치에서 구슬을 내보내 다음 장치를 움직였다.\n- 전달: 종·북·징과 시패로 시각을 알렸다.\n- 운영: 물 교체와 절기별 조정이 필요했다.\n\n## 자주 묻는 질문\n\n### 자격루는 1433년과 1434년 중 언제 만들어졌나\n\n우리역사넷은 1433년을 완성 시점으로 정리한다. 그해 실록에도 자격궁루 제작 공로가 나온다. 새 누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날은 1434년 음력 7월 1일이다.\n\n### 자동 시보가 되면 사람이 전혀 필요 없었나\n\n자동화된 핵심 업무는 시각을 판단해 알리는 동작이었다. 실록에는 물을 바꿀 때 수수호를 교대로 쓴다고 나온다. 절기에 맞춰 부품을 바꾸는 관리도 필요했다.\n\n### 자격루와 보루각은 같은 것인가\n\n자격루는 물시계이고 보루각은 이를 설치한 건물이다. 세종대 자격루는 경복궁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서 운영됐다. 이 때문에 보루각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n\n### 박물관의 물통을 장영실이 직접 만들었나\n\n현존 물통은 장영실의 원래 제작품이 아니다. 1536년 창경궁에 설치한 자격루의 일부다. 세종대 자동 시보 장치 전체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n\n### 장영실은 1442년에 사망했나\n\n1442년은 가마 사고와 처벌을 설명할 때 나오는 해다. 이 사건을 사망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의 사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content_html":"\u003cp\u003e장영실 등은 1433년 자격루를 완성했다. 사람이 물시계를 지키며 시각을 알려야 하는 문제를 자동 시보로 풀었다. 1434년 7월부터 사용한 이 장치는 조선의 시간 관리 방식을 바꾼 성과로 기억된다.\u003c/p\u003e\n\u003cp\u003e이 글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세종실록』 기록을 따르며 2026년 10월에 확인했다.\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C%9E%90%EA%B2%A9%EB%A3%A8-%EC%A0%9C%EC%9E%91%EC%9D%98-%EA%B3%BC%EC%A0%9C%EB%8A%94-%EB%AC%B4%EC%97%87%EC%9D%B4%EC%97%88%EB%82%98\" class=\"anchor\" id=\"자격루-제작의-과제는-무엇이었나\"\u003e\u003c/a\u003e자격루 제작의 과제는 무엇이었나\u003c/h2\u003e\n\u003cp\u003e자격루는 사람이 시각을 읽고 알려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기존 물시계는 물이 차오르면 눈금이 있는 살대가 올라갔다. 담당자는 그 눈금을 지켜보다 시각을 알려야 했다.\u003c/p\u003e\n\u003cp\u003e시보는 정해진 시각을 소리나 표시로 알리는 일이다. 물시계가 시간을 재더라도 담당자가 잘못 읽으면 신호가 어긋났다. 『세종실록』은 세종이 시보 담당자의 착오를 우려했다고 기록한다. 자격루에는 이 일을 대신할 나무 인형 장치가 붙었다. \u003ca href=\"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607001_004\"\u003e『세종실록』 세종 16년 7월 1일\u003c/a\u003e\u003c/p\u003e\n\u003c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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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기존의 사람이 지키는 물시계\"\u003e물시계 관리와 시보\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자격루\"\u003e물 교체와 장치 관리\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body\u003e\n\u003c/table\u003e\u003c/div\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A%B4%80%EB%85%B8-%EC%B6%9C%EC%8B%A0-%EA%B8%B0%EC%88%A0%EC%9E%90%EA%B0%80-%EA%B4%80%EC%A7%81%EC%97%90-%EC%98%A4%EB%A5%B4%EA%B8%B0%EA%B9%8C%EC%A7%80\" class=\"anchor\" id=\"관노-출신-기술자가-관직에-오르기까지\"\u003e\u003c/a\u003e관노 출신 기술자가 관직에 오르기까지\u003c/h2\u003e\n\u003cp\u003e장영실의 관직 진출에는 출신 신분에 따른 반대가 있었다. 그는 동래현 관노 출신으로 알려진 조선 초기 기술자다. 관노는 관청에 속한 남성 노비를 뜻한다.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u003c/p\u003e\n\u003cp\u003e1433년 실록에는 상의원 임용을 둘러싼 과거 논의가 나온다. 허조는 어머니의 신분을 이유로 반대했다. 조말생은 장영실이 상의원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세종은 이후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 별좌에 임명했다.\u003c/p\u003e\n\u003cp\u003e기술의 성과가 관직 상승으로 이어진 전환점은 자격궁루 제작이었다. 세종은 제작 공로를 들어 호군직을 더해 주려 했다. 대신들은 찬성했고, 세종은 그 의견을 따랐다.\u003c/p\u003e\n\u003cblockquote\u003e\n\u003cp\u003e오래도록 전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공이 작지 않다. 호군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u003c/p\u003e\n\u003c/blockquote\u003e\n\u003cp\u003e세종, 『세종실록』 세종 15년 9월 16일. \u003ca href=\"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509016_003\"\u003e해당 기사\u003c/a\u003e\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C%A0%9C%EC%9E%91%EA%B3%BC-%EC%82%AC%EC%9A%A9%EC%9D%84-%EA%B5%AC%EB%B6%84%ED%95%9C-%EC%97%B0%ED%91%9C\" class=\"anchor\" id=\"제작과-사용을-구분한-연표\"\u003e\u003c/a\u003e제작과 사용을 구분한 연표\u003c/h2\u003e\n\u003cp\u003e자격루의 완성과 실제 사용 시작은 서로 다른 기록으로 확인된다. 우리역사넷의 자격루 해설은 완성 시점을 1433년으로 정리한다. 실록에는 \u003cstrong\u003e1434년 음력 7월 1일\u003c/strong\u003e부터 새 누기를 썼다고 나온다. 아래 월일은 당시 음력 기록을 그대로 적었다.\u003c/p\u003e\n\u003cdiv class=\"overflow-x-auto\"\u003e\u003ctable\u003e\n\u003cthead\u003e\n\u003ctr\u003e\n\u003cth\u003e시기\u003c/th\u003e\n\u003cth\u003e확인되는 사건\u003c/th\u003e\n\u003cth\u003e근거\u003c/th\u003e\n\u003c/tr\u003e\n\u003c/thead\u003e\n\u003ctbody\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시기\"\u003e1433년 9월 16일\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확인되는 사건\"\u003e자격궁루 제작 공로와 호군직 부여 논의\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근거\"\u003e『세종실록』 세종 15년 해당 기사\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시기\"\u003e1434년 7월 1일\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확인되는 사건\"\u003e새 누기 사용 시작과 자동 시보 구조 설명\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근거\"\u003e『세종실록』 세종 16년 해당 기사\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시기\"\u003e1437년 6월 28일\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확인되는 사건\"\u003e궁중의 시각 신호를 의금부까지 전달하도록 함\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근거\"\u003e『세종실록』 세종 19년 해당 기사\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시기\"\u003e1438년\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확인되는 사건\"\u003e천체의 변화도 보여주는 옥루 제작\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근거\"\u003e우리역사넷 「세종대 천문기기와 역법」\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시기\"\u003e1442년 3월\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확인되는 사건\"\u003e감독해 만든 왕의 가마가 부러져 조사받음\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근거\"\u003e우리역사넷 「장영실」\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시기\"\u003e1536년\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확인되는 사건\"\u003e창경궁에 추가로 자격루 설치\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근거\"\u003e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설명\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body\u003e\n\u003c/table\u003e\u003c/div\u003e\n\u003cp\u003e1433년의 기사는 제작 성과를 확인해 주는 기록이다. 이 기사만으로 완성 날짜나 시험 일정을 정할 수는 없다. 1434년의 기사는 사용 시작과 장치 구성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u003ca href=\"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30\u0026amp;levelId=kc_r300785\"\u003e우리역사넷 「자격루」\u003c/a\u003e\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C%9E%90%EA%B2%A9%EB%A3%A8-%EC%9E%91%EB%8F%99-%EC%9B%90%EB%A6%AC\" class=\"anchor\" id=\"자격루-작동-원리\"\u003e\u003c/a\u003e자격루 작동 원리\u003c/h2\u003e\n\u003cp\u003e자격루는 수면의 상승을 구슬의 움직임으로 바꾸어 시각을 알렸다. 물시계 부분은 시간이 흐른 정도를 측정했다. 시보 장치는 그 움직임을 받아 소리와 인형의 표시로 바꾸었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B%AC%BC%EC%9D%84-%EB%B3%B4%EB%82%B4%EB%8A%94-%ED%86%B5%EA%B3%BC-%EB%B0%9B%EB%8A%94-%ED%86%B5\" class=\"anchor\" id=\"물을-보내는-통과-받는-통\"\u003e\u003c/a\u003e물을 보내는 통과 받는 통\u003c/h3\u003e\n\u003cp\u003e파수호는 물을 흘려보내는 통이고, 수수호는 그 물을 받는 통이다. 1434년 실록은 파수호 4개와 수수호 2개를 기록한다. 수수호는 물을 바꿀 때 번갈아 사용했다. 받는 통의 수면이 높아지면 그 안의 살대도 올라갔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C%82%B4%EB%8C%80%EC%97%90%EC%84%9C-%EA%B5%AC%EC%8A%AC%EB%A1%9C-%EC%9D%B4%EC%96%B4%EC%A7%80%EB%8A%94-%EC%9E%91%EB%8F%99-%EC%88%9C%EC%84%9C\" class=\"anchor\" id=\"살대에서-구슬로-이어지는-작동-순서\"\u003e\u003c/a\u003e살대에서 구슬로 이어지는 작동 순서\u003c/h3\u003e\n\u003cp\u003e살대는 정해진 높이에 도달하면 구슬을 내보내는 장치를 움직였다. 작은 구리 구슬은 더 큰 쇠구슬의 방출 장치에 작용했다. 떨어지는 구슬의 힘이 시보 인형을 움직이는 데 쓰였다.\u003c/p\u003e\n\u003col\u003e\n\u003cli\u003e파수호의 물이 수수호로 흘러 들어간다.\u003c/li\u003e\n\u003cli\u003e물이 차오르면서 수수호 안의 살대가 올라간다.\u003c/li\u003e\n\u003cli\u003e살대가 정해진 위치에서 작은 구슬의 방출 장치를 작동시킨다.\u003c/li\u003e\n\u003cli\u003e작은 구슬이 지렛대 장치를 움직여 큰 쇠구슬을 놓아준다.\u003c/li\u003e\n\u003cli\u003e쇠구슬의 움직임이 인형의 시보 동작으로 이어진다.\u003c/li\u003e\n\u003c/ol\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C%A2%85%EB%B6%81%EC%A7%95%EC%9D%80-%EB%AC%B4%EC%97%87%EC%9D%84-%EC%95%8C%EB%A0%B8%EB%82%98\" class=\"anchor\" id=\"종북징은-무엇을-알렸나\"\u003e\u003c/a\u003e종·북·징은 무엇을 알렸나\u003c/h3\u003e\n\u003cp\u003e종·북·징은 서로 다른 시간 구분을 알리는 데 쓰였다. 종은 시를, 북은 경을, 징은 점을 알렸다. 시각을 적은 패를 든 인형도 번갈아 나타났다.\u003c/p\u003e\n\u003cdiv class=\"overflow-x-auto\"\u003e\u003ctable\u003e\n\u003cthead\u003e\n\u003ctr\u003e\n\u003cth\u003e표시 장치\u003c/th\u003e\n\u003cth\u003e알리는 내용\u003c/th\u003e\n\u003c/tr\u003e\n\u003c/thead\u003e\n\u003ctbody\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표시 장치\"\u003e종을 치는 인형\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알리는 내용\"\u003e하루를 나눈 시\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표시 장치\"\u003e북을 치는 인형\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알리는 내용\"\u003e밤을 나눈 경\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표시 장치\"\u003e징을 치는 인형\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알리는 내용\"\u003e경을 다시 나눈 점\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표시 장치\"\u003e시패를 든 인형\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알리는 내용\"\u003e해당 시각의 표시\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body\u003e\n\u003c/table\u003e\u003c/div\u003e\n\u003cp\u003e밤의 시보에는 계절에 맞춘 조정도 필요했다. 실록에는 절기에 따라 동판을 바꾸어 쓰는 구조가 나온다. 자동 시보가 물 교체나 계절별 조정까지 없앴다는 뜻은 아니다. \u003ca href=\"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607001_004\"\u003e『세종실록』의 누기 구조 설명\u003c/a\u003e\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A%B6%81%EC%A4%91%EC%9D%98-%EC%8B%9C%EA%B0%81%EC%9D%80-%EC%96%B4%EB%96%BB%EA%B2%8C-%EB%8F%84%EC%84%B1%EC%9C%BC%EB%A1%9C-%EC%A0%84%EB%8B%AC%EB%90%90%EB%82%98\" class=\"anchor\" id=\"궁중의-시각은-어떻게-도성으로-전달됐나\"\u003e\u003c/a\u003e궁중의 시각은 어떻게 도성으로 전달됐나\u003c/h2\u003e\n\u003cp\u003e1437년에는 궁중 자격루의 신호를 의금부까지 전달하는 방식이 채택됐다. 의정부는 기존 누기의 부정확함을 문제로 들었다. 담당자의 착오도 출입 시각이 어긋나는 원인으로 지적했다.\u003c/p\u003e\n\u003cp\u003e의정부는 중간 지점에 금고를 두어 신호를 전달하자고 청했다. 금고는 금속 타악기와 북을 가리킨다. 궁중 자격루 소리를 듣고 차례로 신호를 내는 방식이었다. 세종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u003ca href=\"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906028_003\"\u003e『세종실록』 세종 19년 6월 28일\u003c/a\u003e\u003c/p\u003e\n\u003cdiv class=\"overflow-x-auto\"\u003e\u003ctable\u003e\n\u003cthead\u003e\n\u003ctr\u003e\n\u003cth\u003e단계\u003c/th\u003e\n\u003cth\u003e역할\u003c/th\u003e\n\u003cth\u003e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u003c/th\u003e\n\u003c/tr\u003e\n\u003c/thead\u003e\n\u003ctbody\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단계\"\u003e궁중 자격루\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역할\"\u003e기준이 되는 시각 신호 생성\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u003e출발점의 시각을 맞춤\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단계\"\u003e중간 전달 지점\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역할\"\u003e소리를 듣고 다음 신호 전달\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u003e궁중 밖으로 신호를 이어 보냄\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단계\"\u003e의금부까지의 전달\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역할\"\u003e도성의 시각 알림에 연결\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기록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u003e여러 장소가 같은 기준을 따르게 함\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body\u003e\n\u003c/table\u003e\u003c/div\u003e\n\u003cp\u003e이 기록으로 자동화의 범위를 구분할 수 있다. 궁중에서는 기계가 시각을 알렸다. 궁중 밖에서는 사람이 소리를 듣고 신호를 이어 보냈다. 이를 공통 시각을 공유하는 운영 체계로 보는 것은 기록에 근거한 해석이다.\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C%9E%A5%EC%98%81%EC%8B%A4-%EC%97%85%EC%A0%81%EA%B3%BC-%EA%B3%B5%EB%8F%99-%EC%A0%9C%EC%9E%91%EC%9D%98-%EB%B2%94%EC%9C%84\" class=\"anchor\" id=\"장영실-업적과-공동-제작의-범위\"\u003e\u003c/a\u003e장영실 업적과 공동 제작의 범위\u003c/h2\u003e\n\u003cp\u003e장영실의 활동은 물시계와 천문 관측 기구 제작에 걸쳐 있었다. 우리역사넷은 명나라에서 천문 기구를 배운 활동도 소개한다. 이 내용은 후대 기록인 『연려실기술』을 함께 살펴야 한다.\u003c/p\u003e\n\u003cp\u003e기구 제작에는 문헌 연구와 기술 작업의 분담이 있었다. 간의 제작에서는 정초·정인지 등이 제도를 연구했다. 장영실과 이천은 기술자 감독을 맡았다. 갑인자 주조 참여와 광물 생산 감독도 그의 활동에 포함된다. \u003ca href=\"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0300\"\u003e우리역사넷 「장영실」\u003c/a\u003e\u003c/p\u003e\n\u003cdiv class=\"overflow-x-auto\"\u003e\u003ctable\u003e\n\u003cthead\u003e\n\u003ctr\u003e\n\u003cth\u003e기구\u003c/th\u003e\n\u003cth\u003e주요 기능\u003c/th\u003e\n\u003cth\u003e자격루와의 관계\u003c/th\u003e\n\u003c/tr\u003e\n\u003c/thead\u003e\n\u003ctbody\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기구\"\u003e간의\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주요 기능\"\u003e천체의 위치 관측\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자격루와의 관계\"\u003e시계와 관측 결과를 맞추는 데 관련됨\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기구\"\u003e혼천의\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주요 기능\"\u003e천체의 위치와 운행 파악\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자격루와의 관계\"\u003e천문 관측 사업의 일부\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기구\"\u003e앙부일구\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주요 기능\"\u003e해 그림자로 시각과 절기 파악\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자격루와의 관계\"\u003e햇빛을 이용하는 해시계\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기구\"\u003e자격루\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주요 기능\"\u003e물의 흐름으로 측정한 시각을 자동 전달\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자격루와의 관계\"\u003e보루각에 설치한 물시계\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기구\"\u003e옥루\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주요 기능\"\u003e시각과 천체 변화 표시\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자격루와의 관계\"\u003e1438년 흠경각에 설치한 천문시계\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body\u003e\n\u003c/table\u003e\u003c/div\u003e\n\u003cp\u003e앙부일구는 오목한 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읽는 기구다. 자격루는 햇빛이 없는 밤에도 시간을 잴 수 있었다. 옥루에는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가 더해졌다. 이 기구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측과 시간 측정을 맡았다. \u003ca href=\"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tt/view.do?levelId=tt_b21\"\u003e우리역사넷 「세종대 천문기기와 역법」\u003c/a\u003e\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C%A7%80%EA%B8%88-%EB%82%A8%EC%9D%80-%EB%AC%BC%ED%86%B5%EC%9D%80-%EC%96%B4%EB%8A%90-%EC%8B%9C%EB%8C%80%EC%9D%98-%EA%B2%83%EC%9D%B8%EA%B0%80\" class=\"anchor\" id=\"지금-남은-물통은-어느-시대의-것인가\"\u003e\u003c/a\u003e지금 남은 물통은 어느 시대의 것인가\u003c/h2\u003e\n\u003cp\u003e현존하는 창경궁 자격루 누기는 \u003cstrong\u003e1536년 제작된 기구의 일부\u003c/strong\u003e다. 장영실이 만든 세종대 자격루는 전하지 않는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남은 유물을 파수호 3점과 수수호 2점으로 설명한다.\u003c/p\u003e\n\u003cdiv class=\"overflow-x-auto\"\u003e\u003ctable\u003e\n\u003cthead\u003e\n\u003ctr\u003e\n\u003cth\u003e구분\u003c/th\u003e\n\u003cth\u003e세종대 자격루\u003c/th\u003e\n\u003cth\u003e현존 창경궁 자격루 누기\u003c/th\u003e\n\u003c/tr\u003e\n\u003c/thead\u003e\n\u003ctbody\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구분\"\u003e시기\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세종대 자격루\"\u003e1433년 완성, 1434년 사용 시작\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현존 창경궁 자격루 누기\"\u003e1536년 창경궁에 추가 설치\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구분\"\u003e성격\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세종대 자격루\"\u003e장영실 등이 만든 자동 물시계\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현존 창경궁 자격루 누기\"\u003e세종대 기구를 계승한 개량본의 일부\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구분\"\u003e물통 구성\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세종대 자격루\"\u003e기록상 파수호 4개, 수수호 2개\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현존 창경궁 자격루 누기\"\u003e현존 파수호 3점, 수수호 2점\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r\u003e\n\u003ctd data-label=\"구분\"\u003e보존 상태\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세종대 자격루\"\u003e원래 기구가 전하지 않음\u003c/td\u003e\n\u003ctd data-label=\"현존 창경궁 자격루 누기\"\u003e물통이 남아 있음\u003c/td\u003e\n\u003c/tr\u003e\n\u003c/tbody\u003e\n\u003c/table\u003e\u003c/div\u003e\n\u003cp\u003e남은 물통만으로 자동 시보의 전체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수수호에는 제작 참여자들의 직책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대파수호의 명문은 제작 시기를 확인하는 근거다. 현존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으로 확인된다. \u003ca href=\"https://www.gogung.go.kr/gogung/pgm/psgudMng/view.do?menuNo=800065\u0026amp;psgudSn=370348\"\u003e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설명\u003c/a\u003e\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A%B8%B0%EB%A1%9D%EA%B3%BC-%ED%95%B4%EC%84%9D\" class=\"anchor\" id=\"기록과-해석\"\u003e\u003c/a\u003e기록과 해석\u003c/h2\u003e\n\u003cp\u003e직접 기록된 사실과 후대의 설명은 구분해야 한다. 실록은 자격루 제작 공로와 사용 시작을 확인하는 핵심 사료다. 인물의 어린 시절이나 만년까지 같은 수준으로 알려진 것은 아니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A%B8%B0%EB%A1%9D%EC%9C%BC%EB%A1%9C-%ED%99%95%EC%9D%B8%EB%90%98%EB%8A%94-%EC%82%AC%EC%8B%A4\" class=\"anchor\" id=\"기록으로-확인되는-사실\"\u003e\u003c/a\u003e기록으로 확인되는 사실\u003c/h3\u003e\n\u003cp\u003e1433년 실록은 세종이 장영실의 제작 공로를 인정했다고 전한다. 1434년 기사는 새 누기의 구조를 설명한다. 1437년 기사에는 시각 신호 전달 방식을 채택한 사실이 나온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D%95%B4%EC%84%A4%EC%97%90%EC%84%9C-%EA%B3%B5%ED%86%B5%EC%9C%BC%EB%A1%9C-%EC%84%A4%EB%AA%85%ED%95%98%EB%8A%94-%EC%9D%98%EB%AF%B8\" class=\"anchor\" id=\"해설에서-공통으로-설명하는-의미\"\u003e\u003c/a\u003e해설에서 공통으로 설명하는 의미\u003c/h3\u003e\n\u003cp\u003e우리역사넷 해설은 자동 시보가 담당자의 부담을 덜었다고 설명한다. 시간 측정과 전달을 기계적으로 연결했다는 해석이다. 다만 이를 오차가 전혀 없는 장치였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A%B8%B0%EB%A1%9D%EC%9D%B4-%EC%97%87%EA%B0%88%EB%A6%AC%EA%B1%B0%EB%82%98-%ED%99%95%EC%9D%B8%EB%90%98%EC%A7%80-%EC%95%8A%EB%8A%94-%EB%B6%80%EB%B6%84\" class=\"anchor\" id=\"기록이-엇갈리거나-확인되지-않는-부분\"\u003e\u003c/a\u003e기록이 엇갈리거나 확인되지 않는 부분\u003c/h3\u003e\n\u003cp\u003e가계에 관해서는 실록과 『아산장씨세보』의 설명이 다르다. 중국에서 귀화한 선대의 시점과 계통이 일치하지 않는다. 상의원 별좌에 임명된 정확한 날짜도 확정하기 어렵다.\u003c/p\u003e\n\u003cp\u003e1442년 가마 사고 뒤에는 처벌과 파직이 이어졌다. 이후 행적과 사망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를 사망 연도나 은거 장소로 단정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의 일화나 극중 장면도 사료와 구분해야 한다. \u003ca href=\"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0300\"\u003e우리역사넷의 생애와 기록 검토\u003c/a\u003e\u003c/p\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C%98%A4%EB%8A%98%EB%82%A0-%EC%9E%90%EB%8F%99-%EC%8B%9C%EB%B3%B4%EB%A5%BC-%EC%A3%BC%EB%AA%A9%ED%95%98%EB%8A%94-%EC%9D%B4%EC%9C%A0\" class=\"anchor\" id=\"오늘날-자동-시보를-주목하는-이유\"\u003e\u003c/a\u003e오늘날 자동 시보를 주목하는 이유\u003c/h2\u003e\n\u003cp\u003e자격루는 측정한 정보를 필요한 순간에 전달한 기계의 사례다. 물의 높이라는 연속적인 변화를 정해진 시각의 신호로 바꾸었다. 그 신호는 소리와 인형의 표시로 전달됐다.\u003c/p\u003e\n\u003cp\u003e오늘날의 자동화와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은 기능의 연결이다. 아래 구분은 당시 장치를 이해하기 위한 현대적 분석이다. 전자 장치나 컴퓨터와 같은 기술이었다는 뜻은 아니다.\u003c/p\u003e\n\u003cul\u003e\n\u003cli\u003e측정: 물의 흐름과 살대의 높이로 시간 경과를 나타냈다.\u003c/li\u003e\n\u003cli\u003e작동: 정해진 위치에서 구슬을 내보내 다음 장치를 움직였다.\u003c/li\u003e\n\u003cli\u003e전달: 종·북·징과 시패로 시각을 알렸다.\u003c/li\u003e\n\u003cli\u003e운영: 물 교체와 절기별 조정이 필요했다.\u003c/li\u003e\n\u003c/ul\u003e\n\u003ch2\u003e\n\u003ca href=\"#%EC%9E%90%EC%A3%BC-%EB%AC%BB%EB%8A%94-%EC%A7%88%EB%AC%B8\" class=\"anchor\" id=\"자주-묻는-질문\"\u003e\u003c/a\u003e자주 묻는 질문\u003c/h2\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C%9E%90%EA%B2%A9%EB%A3%A8%EB%8A%94-1433%EB%85%84%EA%B3%BC-1434%EB%85%84-%EC%A4%91-%EC%96%B8%EC%A0%9C-%EB%A7%8C%EB%93%A4%EC%96%B4%EC%A1%8C%EB%82%98\" class=\"anchor\" id=\"자격루는-1433년과-1434년-중-언제-만들어졌나\"\u003e\u003c/a\u003e자격루는 1433년과 1434년 중 언제 만들어졌나\u003c/h3\u003e\n\u003cp\u003e우리역사넷은 1433년을 완성 시점으로 정리한다. 그해 실록에도 자격궁루 제작 공로가 나온다. 새 누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날은 1434년 음력 7월 1일이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C%9E%90%EB%8F%99-%EC%8B%9C%EB%B3%B4%EA%B0%80-%EB%90%98%EB%A9%B4-%EC%82%AC%EB%9E%8C%EC%9D%B4-%EC%A0%84%ED%98%80-%ED%95%84%EC%9A%94-%EC%97%86%EC%97%88%EB%82%98\" class=\"anchor\" id=\"자동-시보가-되면-사람이-전혀-필요-없었나\"\u003e\u003c/a\u003e자동 시보가 되면 사람이 전혀 필요 없었나\u003c/h3\u003e\n\u003cp\u003e자동화된 핵심 업무는 시각을 판단해 알리는 동작이었다. 실록에는 물을 바꿀 때 수수호를 교대로 쓴다고 나온다. 절기에 맞춰 부품을 바꾸는 관리도 필요했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C%9E%90%EA%B2%A9%EB%A3%A8%EC%99%80-%EB%B3%B4%EB%A3%A8%EA%B0%81%EC%9D%80-%EA%B0%99%EC%9D%80-%EA%B2%83%EC%9D%B8%EA%B0%80\" class=\"anchor\" id=\"자격루와-보루각은-같은-것인가\"\u003e\u003c/a\u003e자격루와 보루각은 같은 것인가\u003c/h3\u003e\n\u003cp\u003e자격루는 물시계이고 보루각은 이를 설치한 건물이다. 세종대 자격루는 경복궁 경회루 남쪽 보루각에서 운영됐다. 이 때문에 보루각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B%B0%95%EB%AC%BC%EA%B4%80%EC%9D%98-%EB%AC%BC%ED%86%B5%EC%9D%84-%EC%9E%A5%EC%98%81%EC%8B%A4%EC%9D%B4-%EC%A7%81%EC%A0%91-%EB%A7%8C%EB%93%A4%EC%97%88%EB%82%98\" class=\"anchor\" id=\"박물관의-물통을-장영실이-직접-만들었나\"\u003e\u003c/a\u003e박물관의 물통을 장영실이 직접 만들었나\u003c/h3\u003e\n\u003cp\u003e현존 물통은 장영실의 원래 제작품이 아니다. 1536년 창경궁에 설치한 자격루의 일부다. 세종대 자동 시보 장치 전체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u003c/p\u003e\n\u003ch3\u003e\n\u003ca href=\"#%EC%9E%A5%EC%98%81%EC%8B%A4%EC%9D%80-1442%EB%85%84%EC%97%90-%EC%82%AC%EB%A7%9D%ED%96%88%EB%82%98\" class=\"anchor\" id=\"장영실은-1442년에-사망했나\"\u003e\u003c/a\u003e장영실은 1442년에 사망했나\u003c/h3\u003e\n\u003cp\u003e1442년은 가마 사고와 처벌을 설명할 때 나오는 해다. 이 사건을 사망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의 사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u003c/p\u003e\n","tags":["조선시대","문화유산"],"faqs":[{"question":"자격루는 어떤 시계인가","answer":"자격루는 물의 흐름으로 시간을 재고 시각을 자동으로 알리는 물시계다. 구슬과 기계 장치가 인형을 움직여 종·북·징을 울렸다."},{"question":"자격루는 1433년과 1434년 중 언제 만들어졌나","answer":"우리역사넷은 1433년을 완성 시점으로 정리한다. 실록에는 1434년 음력 7월 1일부터 새 누기를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question":"물의 흐름이 어떻게 시보로 바뀌었나","answer":"물이 차오르면 살대가 올라가 구슬 방출 장치를 움직였다. 구슬의 움직임이 다른 기계 장치로 전달돼 인형의 시보 동작으로 이어졌다."},{"question":"종·북·징은 각각 무엇을 알렸나","answer":"종은 시를, 북은 경을, 징은 점을 알렸다. 시각을 적은 패를 든 인형도 번갈아 나타났다."},{"question":"자동 시보가 되면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 없었나","answer":"시각을 읽고 알리는 동작은 자동화됐지만 관리 업무는 남았다. 물을 교체하고 절기에 맞춰 부품을 바꾸어야 했다."},{"question":"자격루와 보루각은 같은 것인가","answer":"자격루는 물시계이고 보루각은 그 시계를 설치한 건물이다. 보루각에 설치된 자격루는 보루각루라고도 불렸다."},{"question":"궁중 자격루의 시각을 궁궐 밖에서도 이용했나","answer":"1437년 실록에는 자격루 소리를 듣고 중간 지점에서 신호를 전달하게 한 기록이 있다. 의금부까지 신호를 이어 보내는 방식이 채택됐다."},{"question":"현재 남은 자격루는 장영실이 만든 원본인가","answer":"현존 창경궁 자격루 누기는 1536년 제작된 기구의 일부다. 장영실이 만든 세종대 원래 기구는 전하지 않는다."},{"question":"현재 남아 있는 자격루 부품은 무엇인가","answer":"국립고궁박물관은 파수호 3점과 수수호 2점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자동 시보 장치 전체가 보존된 상태는 아니다."},{"question":"자격루와 앙부일구의 차이는 무엇인가","answer":"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하는 자동 물시계다. 앙부일구는 오목한 면에 드리운 해 그림자로 시각과 절기를 읽는 해시계다."},{"question":"장영실은 1442년에 사망했나","answer":"1442년 가마 사고를 사망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이후 행적과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sources":[{"url":"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509016_003","title":"『세종실록』 세종 15년 9월 16일, 장영실에게 호군의 관직을 더해 줄 것을 의논하다","type":"source"},{"url":"https://sillok.history.go.kr/id/kda_11607001_004","title":"『세종실록』 세종 16년 7월 1일, 새로 만든 누기의 구조와 원리 및 누기 명","type":"source"},{"url":"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906028_003","title":"『세종실록』 세종 19년 6월 28일, 궁중의 자격루 소리를 듣고 밤과 새벽을 나누는 종을 치게 하다","type":"source"},{"url":"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code=kc_age_30\u0026levelId=kc_r300785","title":"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자격루」","type":"source"},{"url":"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tt/view.do?levelId=tt_b21","title":"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세종대 천문기기와 역법」","type":"source"},{"url":"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n310300","title":"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한국사연대기 「장영실」","type":"source"},{"url":"https://www.gogung.go.kr/gogung/pgm/psgudMng/view.do?menuNo=800065\u0026psgudSn=370348","title":"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안내, 창경궁 자격루 누기","type":"data_point"}],"images":[{"id":1832,"url":"https://injoys.com/rails/active_storage/blobs/proxy/eyJfcmFpbHMiOnsiZGF0YSI6MjgyMzMsInB1ciI6ImJsb2JfaWQifX0=--58a663c9b39b9b712df7b7be552d5304ff117aa8/ai-ea9a09a6.webp","is_representative":true,"generation_method":"ai_infographic","license":"ai_generated","mime_type":"image/webp","width":1536,"height":1024,"visible_locales":["ko"],"translations":{"ko":{"alt":"자격루의 수동·자동 시보, 작동 과정, 연표, 현존 누기와 사라진 원형을 담은 네 칸 도해","caption":"1433년 제작 공로 기록과 1434년 사용 시작은 1536년 현존 개량본과 구분해야 한다.","description":null},"en":{"alt":"Four-panel diagram of manual and automatic time signals, the water clock’s mechanism, a timeline, and surviving parts","caption":"The 1433 record of its construction and its use from 1434 must be distinguished from the surviving 1536 revision.","description":null},"ja":{"alt":"人手と自動による時報、作動の流れ、年表、現存部品を示す4コマの図解","caption":"1433年の製作功績の記録と1434年の使用開始は、現存する1536年の改良版と区別する必要がある。","description":null},"es":{"alt":"Infografía de cuatro paneles sobre las señales horarias, el mecanismo, la cronología y las piezas conservadas","caption":"El registro de su fabricación en 1433 y su uso desde 1434 deben distinguirse de la versión revisada de 1536 que se conserva.","description":null},"id":{"alt":"Infografik empat panel tentang penanda waktu, mekanisme jam air, linimasa, dan bagian yang masih ada","caption":"Catatan pembuatannya pada 1433 dan awal penggunaannya pada 1434 harus dibedakan dari versi perbaikan tahun 1536 yang masih ada.","description":null},"pt":{"alt":"Infográfico em quatro painéis sobre sinais horários, mecanismo do relógio de água, cronologia e peças preservadas","caption":"O registro de sua construção em 1433 e o início do uso em 1434 não devem ser confundidos com a versão de 1536 que sobreviveu.","description":null},"zh-hant":{"alt":"四格圖解呈現人工與自動報時、水鐘運作流程、年表及留存部件","caption":"1433年的製作功績記錄與1434年的啟用，應和現存的1536年改良版區分開來。","description":null},"de":{"alt":"Vier Felder zeigen manuelle und automatische Zeitsignale, den Mechanismus, eine Zeitleiste und erhaltene Teile","caption":"Der Herstellungsbeleg von 1433 und die Nutzung ab 1434 sind von der erhaltenen, überarbeiteten Fassung von 1536 zu unterscheiden.","description":null}}},{"id":1830,"url":"https://injoys.com/rails/active_storage/blobs/proxy/eyJfcmFpbHMiOnsiZGF0YSI6MjgyMjEsInB1ciI6ImJsb2JfaWQifX0=--02ed33bf79e4f20fbde4076a857ce899059f1aab/ai-2b05b4af.webp","is_representative":false,"generation_method":"ai_semi","license":"ai_generated","mime_type":"image/webp","width":1536,"height":1024,"translations":{"ko":{"alt":"새벽 궁궐에서 관리인이 물을 돌보는 가운데, 물그릇들이 종·북·징 장치로 이어져 있다.","caption":"자격루는 사람이 눈금을 읽지 않아도 물의 흐름을 기계 신호로 바꿔 시각을 알렸다.","description":null},"en":{"alt":"At dawn, an attendant tends palace water-clock vessels beside a mechanism with a bell, drum and gong.","caption":"The Jagyeongnu turned flowing water into automatic time signals, replacing the need to read a scale.","description":null},"ja":{"alt":"夜明けの宮殿で係の者が水時計の容器を世話し、そばに鐘・太鼓・鉦の装置が並ぶ。","caption":"自撃漏は水の流れを機械信号に変え、目盛りを人が読まずに時刻を知らせた。","description":null},"es":{"alt":"Al amanecer, un encargado atiende los recipientes de un reloj de agua junto a una campana, un tambor y un gong.","caption":"El Jagyeongnu convertía el flujo del agua en avisos automáticos de la hora, sin tener que leer una escala.","description":null},"id":{"alt":"Saat fajar, seorang petugas mengurus bejana jam air istana di samping mekanisme lonceng, gendang, dan gong.","caption":"Jagyeongnu mengubah aliran air menjadi penanda waktu otomatis tanpa perlu membaca skala.","description":null},"pt":{"alt":"Ao amanhecer, um assistente cuida dos recipientes de um relógio de água junto a um sino, um tambor e um gongo.","caption":"O Jagyeongnu convertia o fluxo da água em avisos automáticos da hora, dispensando a leitura de uma escala.","description":null},"zh-hant":{"alt":"清晨的宮殿裡，侍者照料水鐘容器，旁邊設有鐘、鼓、鑼的機械裝置。","caption":"自擊漏將水流轉為機械訊號，無須由人讀取刻度便能自動報時。","description":null},"de":{"alt":"Im Morgengrauen betreut ein Diener die Gefäße einer Palast-Wasseruhr neben Glocke, Trommel und Gong.","caption":"Die Jagyeongnu wandelte fließendes Wasser in automatische Zeitsignale um, statt eine Skala ablesen zu lassen.","description":null}}},{"id":1831,"url":"https://injoys.com/rails/active_storage/blobs/proxy/eyJfcmFpbHMiOnsiZGF0YSI6MjgyMjcsInB1ciI6ImJsb2JfaWQifX0=--63efa05dc2ea8846dfd6da043fe0f6e3e57d5e95/ai-9d531284.webp","is_representative":false,"generation_method":"ai_semi","license":"ai_generated","mime_type":"image/webp","width":1536,"height":1024,"translations":{"ko":{"alt":"넓은 궁궐 뜰에서 북과 징 옆에 두 수행원이 등을 보이고 서 있다.","caption":"1437년에는 궁중 자격루의 시보를 의금부까지 전달하는 방식이 채택됐다.","description":null},"en":{"alt":"Two attendants stand with their backs turned beside a drum and gong in a broad palace courtyard.","caption":"In 1437, a method was adopted to relay the palace water clock’s time signal to Uigeumbu.","description":null},"ja":{"alt":"広い宮殿の中庭で、二人の従者が太鼓と銅鑼のそばに背を向けて立っている。","caption":"1437年、宮中の自撃漏の時報を義禁府まで伝える方式が採用された。","description":null},"es":{"alt":"Dos asistentes, vistos de espaldas, están junto a un tambor y un gong en un amplio patio palaciego.","caption":"En 1437 se adoptó un método para transmitir la señal horaria del reloj de agua palaciego hasta el Uigeumbu.","description":null},"id":{"alt":"Dua petugas tampak dari belakang di samping genderang dan gong di halaman istana yang luas.","caption":"Pada 1437, cara meneruskan sinyal waktu jam air istana ke Uigeumbu mulai diterapkan.","description":null},"pt":{"alt":"Dois auxiliares, vistos de costas, estão junto a um tambor e um gongo num amplo pátio palaciano.","caption":"Em 1437, adotou-se um método para transmitir o sinal horário do relógio de água do palácio até o Uigeumbu.","description":null},"zh-hant":{"alt":"寬闊的宮廷院落裡，兩名背對觀者的侍從站在鼓和鑼旁。","caption":"1437年，宮中自擊漏的報時訊號傳至義禁府的方式獲得採用。","description":null},"de":{"alt":"Zwei Bedienstete stehen mit dem Rücken zum Betrachter neben Trommel und Gong in einem weiten Palasthof.","caption":"1437 wurde ein Verfahren eingeführt, um das Zeitsignal der Palastwasseruhr an das Uigeumbu weiterzuleiten.","description":null}}}],"published_at":"2026-10-14T17:16:14+09:00","updated_at":"2026-10-14T17:16:14+09:00","license":"cc_by","translation_status":"original","available_locales":["ko","en","ja","es"],"data_locales":["ko","en","ja","es","id","pt","zh-hant","de"],"url":"https://injoys.com/ko/articles/jang-yeong-sil-jagyeongnu-making-and-automatic-time-sign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