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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교육·리뷰

영덕 대형 참치 폐기 사태: 기후변화와 어획 쿼터가 만든 예고된 비극

by 나이크 (injoys.com) 202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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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환희와 절망이 교차한 하루, 영덕의 그날

2025년 7월 8일 새벽, 경상북도 영덕 앞바다는 어민들에게 평생의 꿈과도 같은 순간을 선사했다. 정치망 그물을 걷어 올리자, 거대한 은빛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바다의 로또’라 불리는 대형 참다랑어였다. 이날 잡힌 참다랑어는 약 1,300여 마리, 총중량 170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대부분 길이 1~1.5m, 무게 130~150kg에 이르는 초대형 개체들이었다. 어민들은 “로또 맞은 줄 알았다”며 환호했다. 불과 며칠 전 다른 어선이 참다랑어 62마리로 3,400만 원 이상을 벌었고, 과거 한 마리에 1,0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 사례도 있었기에 , 이번 어획은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닌 대박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전 7시경, 경북도청 해양수산과 사무실은 어민들의 다급한 전화로 빗발쳤다. 전례 없는 대량 어획 소식에 담당 공무원도 놀랐지만, 이내 냉정한 현실이 닥쳐왔다. 경상북도에 할당된 올해 참다랑어 연간 어획 한도(쿼터) 110톤이 이미 모두 소진된 상태였던 것이다. 규정에 따라 경북도청은 영덕군에 ‘참다랑어 포획 금지’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이미 그물을 걷어 올린 뒤였다. 어민들은 “이미 1,300마리를 잡았는데 어떡하란 말이냐”며 하소연했다.  

 

참다랑어는 생물학적 특성상 멈추면 호흡을 못 해 죽기 때문에,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순간 대부분 폐사한다. 방생은 불가능했다. 경북도청은 해양수산부에 긴급하게 쿼터 증량을 요청하는 ‘SOS’를 쳤다. 해수부는 논의 끝에 경북에 150톤의 추가 쿼터를 배정했지만, 결정이 내려진 시각은 이미 오후 6시가 넘은 뒤였다. 그 사이 강구항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170톤의 참다랑어는 여름철 폭염에 신선도를 잃고 빠르게 부패하고 있었다.  

 

결국 ‘바다의 로또’는 상품 가치를 완전히 상실했다. 어민들은 이틀에 걸쳐 썩어가는 참치를 치워야 했고, 이 막대한 양의 어획물은 폐기물 업체를 통해 가축 사료용으로 헐값에 처분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쿼터를 초과한 불운이 아니었다. 어획 신고부터 관계 부처의 논의, 그리고 너무 늦어버린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해양 생태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 시스템의 경직성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 명백한 사례였다. 시스템의 관성이 비극을 키운 것이다.  

 

제2부: 보이지 않는 우리, 참다랑어 쿼터 시스템의 해부

영덕의 어민들이 수십억 원의 가치를 눈앞에서 포기해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복잡한 국제 및 국내 어획 쿼터 시스템에 있다. 이 시스템의 목적은 자원 보호지만, 그 구조적 결함이 오히려 비극적인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국제적 규제와 국가별 할당량

참다랑어는 특정 국가의 영해에만 머무르지 않고 넓은 바다를 회유하는 고도 회유성 어종이다. 이 때문에 과도한 남획을 막고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국제적인 관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는 매년 과학적 평가를 바탕으로 회원국별 어획 한도, 즉 쿼터를 배정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급증하는 참다랑어 출현을 근거로 적극적인 협상을 벌여 2025-2026년 연간 쿼터를 기존 748톤에서 1,219톤으로 63% 증량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거둔 중요한 성과다.  

문제의 핵심: 시대에 뒤떨어진 국내 분배 방식

문제는 국제기구로부터 확보한 국가 총량을 국내 지역별로 분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해양수산부는 이 1,219톤의 쿼터를 각 지역 어업의 특성과 과거 어획 실적 등을 고려해 나눈다. 여기서 현재 동해안의 현실과 정책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가 드러난다.

2025년 기준, 부산광역시는 전체 쿼터의 약 절반에 달하는 610톤 이상을 배정받았다. 반면, 최근 몇 년간 참다랑어 출현의 중심지가 된 경상북도는 고작 110톤을 받는 데 그쳤다. 영덕군에 할당된 양은 35.78톤에 불과했다. 7월 8일 단 하루, 단 한 곳에서 잡힌 170톤은 영덕군 1년 치 쿼터의 약 5배, 경상북도 전체 쿼터의 1.5배를 넘어서는 양이었다.  

지역/항목 할당 쿼터 (톤) 국가 총량 대비 비율 비고
대한민국 국가 총량 1,219 100% 2025-2026년 WCPFC 할당량  
 

부산광역시 610 약 50% 역사적으로 원양 참치 어업의 중심지  
 

경상북도 (전체) 110 약 9% 최근 참다랑어 급증의 진원지  
 

영덕군 (경북 내) 35.78 약 2.9% 170톤 어획 사건 발생지  
 
 

영덕 7월 8일 하루 어획량 약 170 해당 없음 경북 연간 쿼터의 155%  
 

이러한 극심한 불균형의 원인은 쿼터 배분 기준이 ‘역사적 어획 실적’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참다랑어 어업은 부산항을 기지로 한 대형 원양어선들이 태평양 먼바다에서 조업하는 형태가 주를 이뤘다. 따라서 역사적 데이터는 당연히 부산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참다랑어의 주 서식지가 동해 연안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새로운 현실을 이 낡은 기준은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즉, 현재의 쿼터 시스템은 물고기가 ‘있는 곳’이 아니라 ‘있었던 곳’에 자원을 배분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인 셈이다.  

 

제3부: 뜨거워지는 바다, 기후변화가 다시 그리는 해양 지도

영덕 앞바다에 나타난 1,300마리의 참다랑어 떼는 우연이나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이는 한반도 주변 해역, 특히 동해의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강력한 신호이며, 그 배후에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동인이 자리 잡고 있다.

동해, 아열대 어종의 새로운 낙원

과학적 데이터는 동해의 극적인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지난 54년간(1968~2021) 우리나라 해역의 평균 표층 수온은 약 1.35℃ 상승했는데, 이는 전 지구 평균 상승률의 2.5배에 달하는 놀라운 속도다. 특히 동해의 수온 상승세가 가장 가팔랐다. 이로 인해 과거 한류성 어종의 터전이었던 동해는 이제 아열대성 어종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참다랑어에게 동해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이 되었다. 첫째, 참다랑어는 수온 17~23℃의 따뜻한 물을 선호하는데, 이제 동해는 여름철을 중심으로 이 수온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둘째, 이들의 주 먹이가 되는 고등어, 청어, 멸치 등 난류성 어종들이 먼저 동해로 북상하면서 풍부한 먹이사슬이 형성되었다. 한 어민은 참다랑어 떼가 잡히기 직전, 먹이인 청어를 1만 kg 이상 잡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동해가 단순한 먹이터를 넘어 새로운 ‘산란장’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최근 동해 남부와 독도 주변 해역에서 참다랑어의 알과 어린 개체(자치어)를 발견했으며, 이는 동해에 새로운 산란지가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도 경북 참다랑어 어획량 (톤) 동해 수온 관련 주요 관측/사건 관련 자료
2018 2 아열대성 어종 출현 증가 시작  
2019 5 어획량 점진적 증가  
2020 25 -  
2021 278 어획량 폭발적 증가  
2022 412 영덕 장사해수욕장 대량 폐기 사건 발생  
2023 173 (경북) / 477 (전체) 동해 표층 수온, 57년 관측 사상 최고치 기록  
2024 (7월 기준) 168+ (경북) 영덕 1,300마리(170톤) 대량 어획 사건 발생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동해의 수온 상승과 참다랑어 어획량 급증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생태계 체제 전환(Ecological Regime Shift)’이 진행 중임을 의미한다. 이상적인 수온, 풍부한 먹이, 그리고 새로운 산란장의 형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동해의 대형 참다랑어는 이제 ‘뉴노멀’이 되었다. 따라서 정책과 산업은 더 이상 이를 ‘이례적인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재설계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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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막대한 낭비의 대가, 경제적·환경적 피해

현행 쿼터 시스템이 초래하는 문제는 단순히 어민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심각한 환경오염, 그리고 기술적 딜레마가 복합적으로 얽힌 다층적인 피해를 낳고 있다.

찢겨버린 로또, 어민들의 직접적 손실

영덕에서 폐기된 170톤의 참다랑어 가치를 30억 원으로 추산하는 보도도 있었지만 , 이는 최고 등급을 기준으로 한 이상적인 수치다. 보다 보수적으로 최근 실제 위판가(마리당 약 55만 원)를 적용해도 , 1,300마리의 잠재적 가치는 수억 원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어민들이 이 수익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업에 들어간 유류비, 인건비, 어구 관리비 등 수백만 원의 운영 비용까지 고스란히 손해 봤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돈을 들여 잡은 고기를 돈을 들여 버려야 하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바다에 버려지는 자원, 해안 생태계의 위협

쿼터를 초과해 잡힌 참다랑어는 판매가 불가능하기에 바다에 다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원의 낭비를 넘어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2022년 7월,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해변이 수천 마리의 죽은 참치 사체로 뒤덮였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어민들이 쿼터 초과로 버린 참치들이 해류를 타고 밀려와 해변을 오염시키고 극심한 악취를 풍겨 지역 사회에 큰 피해를 주었다. ‘폐기’라는 행위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항구의 골칫거리를 공공의 해안으로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정치망’ 조업과 참다랑어 생물학의 비극적 만남

이번 사건의 비극성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조업 방식과 어종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동해 연안에서 주로 사용되는 ‘정치망(定置網)’은 특정 지점에 그물을 고정해두고 물고기가 스스로 들어오게 하는 방식이다. 이 어법은 효율적이지만 어종을 선택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어민들은 그물을 끌어올리기 전까지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여기에 참다랑어의 생물학적 특성이 더해진다. 참다랑어는 아가미로 물을 통과시켜 호흡하기 위해 끊임없이 헤엄쳐야 하는 ‘의무적 충돌 환기(obligate ram ventilation)’ 어종이다. 그물에 갇혀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이들은 질식사하고 만다. 즉, 정치망에 들어온 참다랑어는 포획과 동시에 죽음이 확정되는 셈이다.  

 

이처럼 비선택적인 어구(정치망)와 생물학적으로 예민한 어종(참다랑어)의 조합은 피할 수 없는 함정을 만든다. 다른 어업처럼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는 ‘캐치 앤 릴리즈(catch-and-release)’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현재의 쿼터 제도 하에서, 참다랑어 떼가 정치망으로 들어오는 한 대량 폐사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필연임을 의미한다.

 

제5부: 망가진 시스템을 넘어, 적응적 미래를 위한 청사진

영덕 참치 폐기 사태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기존의 정책과 제도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었다. 이제는 문제 분석을 넘어, 정책 입안자, 외교관, 그리고 어업계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5.1. 외교 전선: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쿼터 재협상

대한민국은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와의 쿼터 협상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더 이상 ‘역사적 실적’이라는 낡은 기준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동해의 생태계가 완전히 변했다는 최신의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 실행 방안: 본 보고서 3부에서 제시된 동해의 수온 상승, 먹이 생태계 변화, 그리고 새로운 산란장 형성 증거를 WCPFC에 공식 제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동해가 참다랑어의 새로운 핵심 서식지가 되었음을 입증하고, 이를 근거로 국가 총량 쿼터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요구해야 한다. 특히, 일본이 보유한 압도적인 쿼터량(12,828톤)과 한국의 쿼터(1,219톤) 사이의 극심한 격차는 현재의 분배 기준이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5.2. 국내 정책 개혁: 경직성을 넘어 유연성으로

매년 고정된 양을 지역별로 할당하는 경직된 국내 쿼터 분배 시스템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 실행 방안: ‘동적 쿼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국가 총량의 일부를 ‘예비 쿼터’로 비축해두고, 특정 지역에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어군 급증 현상이 발생했을 때 실시간에 가깝게 추가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는 경북처럼 어획량이 폭증하는 지역은 고기를 버리고, 다른 지역의 쿼터는 남아도는 비효율을 막을 수 있다. 이는 현장에서 요구하는 ‘탄력적 한도 배정’ 요구에 부응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5.3. 폐기를 넘어: ‘제로 웨이스트(Zero-Waste)’를 위한 제도 마련

‘합법적 판매’와 ‘불법적 폐기’라는 현재의 이분법적 법률 체계는 막대한 자원 낭비의 근원이다. 이 둘 사이에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야 한다.

  • 실행 방안: 「수산자원관리법」을 개정하여, 불가피하게 쿼터를 초과하여 혼획된 수산물을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경로를 신설해야 한다.  
  • 운영 메커니즘: 쿼터 초과 어획이 검증되면, 해당 어획물을 국립수산과학원과 같은 연구기관이나 지정된 공공기관이 인수한다. 이를 통해 상업적 시장 유통을 원천 차단하여 WCPFC의 자원 보존 목표를 존중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1. 과학 연구용: 동해 참다랑어 개체군의 식성, 유전적 특성, 건강 상태 등을 연구할 귀중한 시료로 사용한다.
    2. 공공 기부: 동물원이나 수족관의 사료로 가공하여 기부한다.
    3. 비식용 제품화: 고부가가치 어분이나 농업용 비료로 가공하여 최소한의 경제적 가치를 회수하고 환경오염을 방지한다.

이러한 ‘제3의 길’은 자원 보존(상업적 남획 방지)과 자원 관리(낭비 방지), 그리고 환경보호(오염 방지)라는 상충하는 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스템 수준의 해법이다.

5.4. 기술 및 조업 방식의 적응

장기적으로는 조업 기술의 적응도 필요하다. 정치망 근처에 접근하는 참다랑어 떼를 미리 감지하여 어민에게 경고하는 음향 장치나 실시간 소나 모니터링 시스템 같은 기술을 연구·개발하여, 재앙적인 혼획 사태 자체를 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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