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억 원의 약속, 그 씁쓸한 첫 출항
서울의 혈맥, 한강 위로 날렵하게 미끄러지며 꽉 막힌 올림픽대로를 여유롭게 추월하는 출근길. 서울시가 926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선보인 '한강버스'가 시민들에게 약속한 미래였습니다. 지옥 같은 도로 정체와 만원 지하철에서 벗어날 새로운 대안, 한강이라는 천혜의 자원을 활용한 혁신적인 대중교통의 등장은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야심 찬 출항의 뱃고동이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밋빛 전망은 거친 현실의 파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운항 이틀 만의 기상 악화로 인한 운행 중단 사태부터 시작해, 화장실 역류, 안전 설비 불량, 심지어 강 한복판에서 멈춰서는 아찔한 사고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 역시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강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유람선'이라는 호평 이면에는, 대중교통으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냉정한 평가가 공존합니다.
한강버스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과연 서울 교통의 새로운 동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 값비싼 관광 상품으로 전락할 것인가. 그 미래는 사소한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정체성을 되묻는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와 세계 도시들의 교훈 속에서 한강버스가 나아갈 길을 심층적으로 진단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목적과 현실 사이에서 표류하는 한강버스
두 개의 얼굴: '힐링'과 '실용성' 사이의 간극
한강버스의 초기 성적표는 언뜻 보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운항 초기부터 높은 탑승률과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순항하는 듯 보였습니다. 탑승객들은 3000원이라는 저렴한 요금으로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 높은 만족도를 표하며 '힐링 효과'가 뛰어나다고 평가합니다.
문제는 이 '성공'이 기획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강버스는 '출퇴근 교통수단'을 표방했지만, 정작 이용객들은 이를 '통근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마곡에서 잠실까지 일반 노선으로 127분, 급행 노선을 타도 82분이 걸리는 느린 속도와 1시간이 넘는 배차 간격은 1분 1초가 아쉬운 직장인들에게는 선택지조차 될 수 없습니다.
결국 현재의 한강버스는 시간이 넉넉한 관광객이나 나들이객에게만 매력적인 반쪽짜리 교통수단이 된 셈입니다. 이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자칫 정책 결정자들에게 '성공'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어, 통근 기능 개선에 필요한 근본적인 수술을 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느리고 여유로운 운행 방식이 오직 여가 목적의 승객만을 끌어들이고, 이들의 만족이 다시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며, 결국 '대중교통'이라는 핵심 목표를 영원히 표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 위의 '라스트 마일': 치명적인 접근성 문제
대중교통의 성패는 다른 교통수단과의 '연결성'에 달려있습니다. 한강버스는 이 지점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냅니다. 총 7개의 선착장 중 시내버스가 직접 연결될 계획인 곳은 4곳에 불과하며, 일부 선착장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20분 이상 걸립니다. 서울시가 무료 셔틀버스와 따릉이를 배치하며 보완에 나섰지만, 기존 버스나 지하철 환승에 비해 번거롭고 시간이 더 걸리는 '환승 페널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 '도보 5분'이라는 시간조차 치명적인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시민들의 지적은 핵심을 찌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강버스 자체가 제공하는 가치, 즉 '시간 단축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에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수고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약 한강버스가 강 위를 압도적인 속도로 주파한다면, 시민들은 기꺼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선착장으로 향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하철보다 느린 상황에서는, 선착장까지의 '라스트 마일'이 아니라 포기를 결심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 걸음'이 되고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강: 정시성, 안전, 그리고 날씨 변수
대중교통의 생명은 '신뢰성'입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까지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한강버스는 이 모든 전제 조건을 흔들고 있습니다.
운항 개시 이틀 만에 집중호우와 팔당댐 방류량 증가로 운항이 전면 중단된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시가 예측한 연간 결항일수 20일이 과연 현실적인지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됩니다. 여기에 선착장마다 배를 대고 출발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연착이 발생하는 문제, 운항 첫날부터 터져 나온 화장실 역류 문제, 비상용 구명조끼 보관함이 구조물에 막혀 열리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설계 결함, 수상스키 보트와의 충돌 위험 등 안전과 운영 미숙 문제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성장통이 아니라, 대중교통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측 가능성'과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표를 던집니다.
역사의 메아리: 2007년 수상택시의 유령
사실 한강을 활용한 수상 교통 정책의 실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현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인 2007년, '한강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야심 차게 도입했던 '수상택시'가 있었습니다.
실패의 해부학
당시 서울시는 하루 2만 명의 이용객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하루 평균 이용객은 100여 명에 그쳤고, 운영 종료 직전인 2023년에는 한 해 이용객이 고작 26명에 불과했습니다 [User 컨텐츠].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습니다. 주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과 동떨어진 선착장의 낮은 접근성, 그리고 5000원이라는 부담스러운 요금이 시민들의 외면을 불렀습니다.
교훈은 있었는가?
17년의 세월이 흘러 등장한 한강버스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요금을 3000원으로 낮추고 대중교통 환승할인을 적용했으며, 선착장 연계 버스 노선을 확충하는 등 표면적인 문제점들을 개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증상에 대한 처방일 뿐, 병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수상택시 실패의 핵심은 '느리고 불편한 서비스를 비싸게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강버스는 요금을 낮췄지만, 여전히 '느리고 불편한 서비스'라는 본질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서울시는 실패한 개념을 약간 더 저렴하고 크게 만들었을 뿐,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전략적 고찰 없이 과거의 그림자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계의 강에서 배우다: 성공과 실패의 조건
한강버스가 마주한 딜레마는 서울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강을 교통과 관광의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그 속에는 우리가 반드시 살펴봐야 할 성공의 조건과 실패의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Case Study 1: 뉴욕 NYC 페리 – 연결성의 진짜 비용
뉴욕의 NYC 페리는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등 5개 자치구를 촘촘하게 연결하며 시민들의 발이자 관광객들의 명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하철 요금과 비슷한 저렴한 요금 체계로 대중교통망에 성공적으로 편입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막대한 재정적 출혈이 있습니다. NYC 페리는 승객 1인당 발생하는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는 '공공 보조금' 규모가 엄청납니다. 2023 회계연도 기준, 승객 한 명이 탈 때마다 뉴욕시가 약 8.55달러(약 1만 1500원)의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선박 구입 등에 들어간 비용의 이자까지 포함하면 실제 보조금은 1인당 12.54달러(약 1만 7000원)에 육박합니다. 연간 총 적자 규모는 5600만 달러(약 750억 원)를 훌쩍 넘습니다. 이는 한강버스의 재정 계획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항목 | 한강버스 (예상) | 뉴욕 NYC 페리 (2023년 실적) |
연간 운영비 | 200억 원 | 약 1,040억 원 ($78.0M) |
연간 운임 수입 | 50억 원 | 약 287억 원 ($21.5M) |
연간 적자 | 150억 원 | 약 754억 원 ($56.5M) |
운임 수입 의존도 | 25% | 27.6% |
1인당 보조금 | 15,000원 (연 100만 명 탑승 가정 시) | 약 11,500원 ($8.55) |
한강버스는 현재 운임 수입으로 운영비의 25%밖에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이미 재정적으로 막대한 부담을 지고 있는 NYC 페리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만약 연간 탑승객이 100만 명에 그친다면, 승객 한 명을 태울 때마다 서울시가 1만 5000원의 세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광고 등 기타 수익'으로 150억 원의 적자를 메우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은, 뉴욕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Case Study 2: 런던 템스 클리퍼스 – 통근자와 관광객, 모두를 잡다
오세훈 시장에게 한강버스 도입의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런던의 템스 클리퍼스(우버 보트)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성공 사례입니다. 템스 클리퍼스는 출퇴근 시간에는 촘촘한 배차 간격으로 직장인들을 실어 나르고, 낮과 주말에는 런던의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며 관광객을 유치합니다.
성공의 핵심은 '전략적 이중성'에 있습니다. 하나의 서비스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통근자를 위해서는 속도와 빈도를, 관광객을 위해서는 매력적인 노선과 편의성을 제공하며 각기 다른 수요에 맞춤형으로 대응합니다. 요금 역시 관광객에게는 편도 25파운드(약 4만 4000원) 이상을 받는 등 유연하게 책정하여 수익성을 확보합니다. 이는 통근과 관광 사이에서 어정쩡한 정체성으로 두 수요층 모두를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강버스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지점입니다.
Case Study 3: 스톡홀름 하이드로포일 – 기술이 미래를 만든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범 운항 중인 전기 수중익선 '칸델라 P-12'는 한강버스가 마주한 기술적 한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수중익선, 즉 하이드로포일은 배 아래의 날개를 이용해 선체를 물 위로 띄워 항해하는 기술입니다. 물의 저항을 80% 가까이 줄여, 기존 선박보다 훨씬 빠른 속도와 높은 에너지 효율을 자랑합니다.
칸델라 P-12의 최고 속도는 시속 46km로, 한강버스의 운항 속도(약 25km/h)를 압도합니다. 시범 운행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자동차나 버스 대비 이동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했고, 평균 80%의 높은 탑승률을 기록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이 수중익선 덕분에 연계 대중교통 이용률이 30%나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앞서 지적한 '환승 페널티의 역전'을 증명합니다. 핵심 이동 구간이 압도적으로 빠르니, 시민들이 기꺼이 환승의 불편을 감수한 것입니다.
이는 한강버스 프로젝트의 가장 근본적인 실수가 기술 선택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속도가 생명인 도심 교통수단에 평범한 선박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통근용'이라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운명이었을지 모릅니다.
예산, 적자, 그리고 정치적 의지
재정 구조 해부: '밑 빠진 독'이 될 것인가?
한강버스의 재정 구조는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926억 원의 초기 투자비는 이미 투입되었고, 앞으로 매년 200억 원의 운영비가 필요합니다. 이 중 운임으로 회수될 것으로 기대되는 금액은 50억 원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150억 원의 적자를 매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될 가능성이 높으며, '세금 먹는 하마'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랜드마크 사업의 정치학
한강버스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많았습니다. 총사업비가 300억 원이 넘는 사업이 받아야 할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자심사를 피하기 위해, 선박 건조 비용 등을 SH공사로 넘기는 방식으로 사업을 '쪼개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서울시 자체 투자심사위원회에서도 "너무 엉뚱하고 창피하다", "실효성이 전혀 없는 계획"이라는 심사위원들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지만 사업은 통과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한강버스가 면밀한 수요예측과 사업성 검토를 거친 정책이라기보다는, 시장의 치적을 위한 '보여주기식' 사업이라는 비판에 힘을 싣습니다.
결론: 한강의 새로운 항로를 그리다
한강버스는 현재 실패한 통근수단이자, 재정적으로 위태로운 반쪽짜리 유람선이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입니다. 이제 서울시는 두 가지 명확한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경로 A: 고속 통근 익스프레스로의 전면 개편
첫 번째 길은 '대중교통'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향해 과감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현재의 선박을 스톡홀름의 하이드로포일 같은 고속·고효율 선박으로 단계적으로 교체하고, 강남·잠실 등 핵심 업무·주거 지구와의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해 선착장을 대폭 확충해야 합니다. 이는 막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한 고위험 전략이지만, 성공한다면 서울의 교통 지도를 바꿀 진정한 혁신이 될 수 있습니다.
경로 B: 프리미엄 공공 유람선으로의 재탄생
두 번째 길은 '통근버스'라는 허울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강버스를 '저렴하고 품격 있는 공공 유람선'으로 공식 재정의하고, 속도보다는 풍경과 경험에 초점을 맞춰 노선을 최적화해야 합니다. 관광 상품과 연계하고, 시간대별·요일별 탄력 요금제를 도입해 수익성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는 교통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는 포기하지만, 이미 투입된 막대한 예산을 시민들을 위한 가치 있는 여가 자원으로 살려내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의 심장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자산입니다. 하지만 그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막연한 기대나 정치적 구호가 아닌, 냉철한 비전과 기술적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재정적 정직함이 필요합니다. 서울시는 이제 어느 항로를 선택할 것인지, 시민들에게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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